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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종료, 새 동행의 시작]

관리자202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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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여름방학 기간 서울의 한 보육원 아동 4명은 교통카드와 학생증, 용돈을 들고 동네 주민센터로 향했다. 주민등록등본을 떼오라는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버스를 타고 주민센터를 찾아가는 것부터 등본을 발급받아 다시 보육원으로 돌아오는 것까지 혼자 힘으로 해야 했다.


보육원 측이 사전에 협조공문을 보낸 주민센터에서는 담당 직원이 아이들이 직접 등본을 뗄 수 있도록 안내했다. 만 14세가 갓 지난 한 중학생은 직원에게 필요한 서류가 뭔지 말하기도 전에 대뜸 “문서에 저만 나오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동거인이 함께 나오지 않게 해 달라는 요구였다.

미션을 내준 사람은 보육원의 자립지원 전담요원이자 아이들에게 ‘삼촌’이라 불리는 우현석(가명·42)씨다. 가정에서 차근차근 성인이 될 준비를 하는 아이들과 달리 보호시설에 머물다 바로 바깥세상에 나서는 아이들은 어깨너머로 배울 기회가 적다. 부모가 해줘야 할 ‘성인 준비’를 우씨가 함께해 주는 셈이다. 그는 14일 “보호종료 시기가 돼 자립해야 하는 아이들에겐 이런 기술 하나하나 연습이 필요하다”며 “한번 해서는 익숙해지기 쉽지 않아 방학마다 숙제를 내준다”고 말했다.

우씨는 보호종료를 앞둔 아이들에게 15만원씩 용돈을 주고 함께 옷을 사러 나가기도 한다. 근처 시장과 쇼핑몰 등을 둘러보면서 옷값이 어느 정도인지, 손에 쥔 돈으로 살 수 있는 적절한 옷은 어떤 것인지 경험하게 하는 차원이다. 원하는 진로에 따라 아이들의 대학 입시를 돕거나 관련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학원을 알아봐 주기도 한다.

당장 자립정착금을 들고 사회로 나온 아이들은 그동안 먹고 싶고, 사고 싶었던 것들을 무계획적으로 소비하기 십상이다. 예산 범위 내에서 어떻게 돈을 소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한 이유다.

가장 복잡한 미션은 ‘주거지원 신청’이다. 우씨는 시설 퇴소 날짜가 정해진 아이들에게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전세지원주택 등 주거지원사업을 신청하게 한 후 서류를 함께 준비한다.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아다니며 지원되는 예산에 맞춰 살 집을 알아보고, 이후에는 수저 그릇 휴지 등 생필품을 구입하는 일까지 돕는다.

공식적으로 우씨가 지원해야 하는 아이들은 보호종료 후 5년 이내의 자립수준평가 대상자까지다. 하지만 5년이 지났다고 도움 요청을 거절할 순 없다고 한다. 그렇게 그가 홀로 돌보는 대상자가 많게는 50명에 이른다. 우씨는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에게 처음부터 완벽한 독립을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라고 했다. 규모가 작은 시설이나 위탁가정 출신 자립준비청년에겐 전담요원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다.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자립한 이채훈(가명·22)씨는 자립지원 전담요원의 존재조차 모른 채 아무런 준비 없이 홀로 서야 했다. 우씨가 시행하는 것과 같은 자립준비 훈련도 받은 적이 없다. 학대가 반복되던 보육원에서 지낸 박정혁(가명·27)씨도 아무런 자립 프로그램을 받지 못한 채 시설을 나왔다.

보육원에서 박씨에게 해준 교육은 의례적인 소방 훈련뿐이었고, 실제 생활에 필요한 지식은 없었다. 박씨는 결국 생활비를 구하기 위해 대출을 받으려다 사기범죄에 연루돼 피의자 신세가 됐다.

그는 “보통 아이들의 부모처럼 자립할 때 함께 집을 알아봐 주고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과정부터 요금은 어떻게 내는지, 명의를 빌려주면 어떻게 되는지 알려주는 어른이 있었더라면 방황하거나 범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혼자서 시작하는 과정을 함께해 주는 사람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자립수준평가 대상자는 1만2399명이다. 그러나 4명 중 1명꼴인 23.1%(2859명)가 ‘연락 두절’ 상태였다. 특히 자립지원이 부족한 위탁가정의 경우 연락 두절 상태가 33.1%(2376명)로 평균보다 월등히 많았다. 보호종료예정아동의 40.2%, 보호종료아동의 35.8%는 자립준비 프로그램에 참여한 경험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시설 교사나 위탁부모 등 주양육자와의 연락 빈도도 시간이 지나면서 단절되는 경향을 보였다. 보호종료아동의 사회적 관계에서도 사후관리 시스템의 공백이 드러났다. 보호종료아동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 1순위로 ‘학교나 동네 친구’(20.5%)를 가장 많이 꼽았다. ‘시설 선생님 또는 위탁부모님’(17.7%)이나 ‘자립지원 전담요원’(3.5%)보다 높은 수치다. 공식적 지원체계보다 비공식적 관계에서 더 큰 사회적 지지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보호종료아동의 81.1%는 ‘보호종료 후 사후관리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정씨는 “정작 혼자 살다 보니 돈을 쓰는 법도 잘 몰라서 다 써버리는 등 낭비하기도 했다”며 “상담과 지원을 해주는 어른이 계속 있어야 생각해볼 수 있는 진로의 폭이 넓어지고 무분별한 대출이나 범죄 등 안 좋은 길로 빠지는 일도 줄일 수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우씨는 자립지원 전담요원의 역할이 형식적인 연락을 하는 수준에 그쳐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틈날 때마다 본인 집에 아이들을 초대해 아내, 두 아이와 함께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한다. 우씨는 “계속 이 아이들의 삼촌이자 지지할 수 있는 어른이고 싶다. 아이들이 50살이 됐을 때도 명절에 우리 집에 찾아와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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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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